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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 석곡리의 지명  
 

석곡리(石谷里)




석곡리는 동면소재지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정선읍내에서 동면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424번 지방도와 동대천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석곡은 억실(億實)과 석항(石項)의 이름을 따서 부른 이름이다.( 왼쪽사진)


억실(億實)
석곡 1리의 중심마을로 억곡(億谷)이라고도 한다. 동대천을 끼고 토지가 비옥하여 쌀농사를 짓는 동면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마을 안쪽에 해방직후 대동국민학교가 개교했으나 이농현상으로 인한 취학아동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자 1992년 3월 폐교, 현재는 정선군 청소년수련원으로 쓰고 있다. 강릉 최(崔)씨의 집성촌으로 세 가호 이외에는 모두 최씨만 살고 있다.

뒤뜰(後坪)
억실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억실 뒤쪽에 있다고 해서 뒤뜰이라고 한다. 오래전 동대천의 물굽이에의해 퇴적된 평지가 넓은 곳으로 30여 년 전만 해도 산자락 아래에 옹기를 굽던 도요지가 있었다. 제4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유기수(劉奇洙)씨가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덕거리(德巨里)
억실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억실 맞은편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사방으로 통하는 큰 길목이라고 해서 '덕거리'라고 한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동면에서 정선읍 덕우리로 가려면 이 곳을 거쳐가야 했고, 남면으로 가는 사람들은 덕거리 남쪽 수류골(水流谷)을 거쳐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으로 넘어 다녔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덕거리에는 주막 등 10여 가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4가호가 살고 있다.

수리골(水流洞)
덕거리 남쪽 골자기 안에 있는 마을이다. 깊은 골자기 안에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이 흐른다고 해서 '수리골'이라고 부른 것이 변해 '수류골'로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남면으로 가는 사람들이 넘어다니던 골짜기로, 이 골짜기를 넘으면 곧바로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 대동초등학교 덕수분교가 있을 만큼 마을 규모가 작지 않았으나 10여년 전인 1990년 폐교했다.

가리미(駕里美)
수류골 남쪽에 있던 마을이다. 10여년 전까지만해도 2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애리
수리골 서족에 있던 마을이다. 마을 뒤에 높은 절벽이 있다고 해서 '애리'라고 해다고 한다. '애(崖)'는 절벽이 있는 마을에 많이 쓰이는 지명이다.

보리산
수리골 동족에 있는 마을이다. 남면 쇄재 동쪽 애리 협곡에 있는 마을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피목(皮木)
수류골 남서족에 있던 마을이다. 일설에는 피나무가 많아서 생긴 지명이라고하나 확실하지 않다. 쇄재 정상으로 도로가 나기 전에 동면에서 거칠현재를 넘어 남면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 마을을 지나다녔다. 25년 전까지만 해도 2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마덕(馬德)
수류골 서쪽에 있던 고지대 마을이다. 마을이 크고 지형지세가 말(馬) 형국이어서 '마덕'이라고 했다. 700여 년 전에 파평 윤씨의 세거지(世居地)로 석곡리에서 제일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에도 40여 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고냉지채소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두리곡
마덕 서남쪽 10리 정도 되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10여 가호가 살았으나 1960년 초 독가촌 철거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돌목(石項)
정선읍 덕우리에 인접한 동면의 관문이다. 석항팔경(石項八景)의 제1경인 석문모연(石門募煙)에서 처럼 기암 절벽이 금강산을 옮겨다 놓은 듯 아름다운 자연석으로 된 석문(石門)이 있어서 돌목이라고 한다. 상돌목과 하돌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베지른골
돌목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돌목에서 덕우삼거리로 내려가는 오른쪽에 있는 계곡으로 골짜기가 깊어 칼로 베어 질러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베지른골'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 햇빛이 아쉽고 그립다고 해서 베지른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후면(後面)
돌목 뒤에 있던 마을이다. 도로변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뒷마을이라고 해서 '후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4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장승백이
돌목 동쪽에 있다. 지금 효자각이 있는 곳 근처 길옆에 장승을 세워 마을 지킴이로 활용하고 이정표로 썼다고 해서 장승백이라고 한다.

거미대(巨美)
마을 앞으로 동대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병풍같은 절벽 위에 옛날 거미대라 하는 정자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방평(芳坪)
돌목 서쪽 동대천변에 형성된 마을이다. 수해 예방을 위해 하천 옆 제방을 따라 심어놓은 숲이 아름답다고 해서 '방평'이라고 한다.

빈지내
거미대와 방평마을 하천 건너편 길가에 있는 마을이다.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맨밭
비암사 강 건너 쪽에 있는 밭을 일컫는 말이다. 땅이 거칠어 밭농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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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정선군지(旌善郡誌』(1974. 정선군)
  2. 『정선의 향사』(1989, 정선군)
  3. 『화암팔경』(1993, 그림바위회)
  4. 『정선 동면 지명유래』(근간, 정선아리랑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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