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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 화암리의 지명  
 

화암리 (畵岩里)




화암리는 동면 소재지 마을이다. 1912년 호촌리(虎村里) 호명동(虎鳴洞)에 있던 면사무소를 이전, 면소재가 되었다. 화암팔경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화암약수, 종유석과 석순이 풍부하고 금광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화암동굴( 왼쪽사진) 등 관광자원이 풍부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그림바위(下畵岩)
면소재지 주변의 마을이다. 마을 주변이 거북바위, 그림바위, 용마소, 맷돌바위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고 해서 '그림바위'라고 한다.

용마소(龍馬沼)
아래 그림바우 앞 동천 개울에 있는 소(沼)로 용마탄생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조 중엽 김(金)씨라는 사람이 부친상을 당하고 장지를 물색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다가 한 도사의 도움으로 장사를 지낸 뒤 옥동자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기가 태어난지 사흘 만에 이곳 저곳을 날듯 뛰어다니다가 선반 위에 올라가 앉자 장사가 날 조짐이라고 해 역적으로 몰릴 것이 두려위 이 아기를 큰 돌로 눌러 죽였다고 한다. 그 후 뒷동산에서 용마가 나타나 몇일을 울부짖으며 떠돌다가 이 소에서 빠져 죽었다고 해 '용마소'라고 한다.
옛날에는 용마소가 깊어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인파들로 붐비는 곳으로, 화암팔경 중에 제3경에 해당되는 곳이다.

화표주
동면 소재지에서 동쪽 소금강 입구에 있는 높이 60미터 정도의 큰 바위 기둥이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이곳 주민들의 기상과도 같아 널리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화표주는 『정선군지(旌善郡誌』와 『정선의 향사』에는 화암팔경 중에 제5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마을의 옛 어른들은 제4경으로 불러왔다.
프랑스 박물관에 전시된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화표주는 이 바위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위 그림바위(上畵岩)
아래 그림바위에서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화표주(華表柱)와 소금강(小金剛)을 옆에 끼고 신선바위(神仙岩), 장기바위 등 주위가 그림 같은 마을이었으나, 일대가 도로확장 등으로 개발되면서 가호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원터(院基)
현재 화암약수가 있는 곳 일대로 조선시대 때 관원들이 유숙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던 곳이라 해서 '원터'라고 한다.

화암약수(畵岩藥水)
화암약수는 1913년 구슬동(九瑟洞) 마을에 당시 살던 문명무(文命武)라는 노인이 발견했다. 어느 날 노인이 꿈속에 원(院)터의 동자바위 아래에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서로 얽히고 설키어 서광을 비치며 하늘 높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황홀감에 놀라 깨어 이상히 여겨 아침 일찍 그 곳을 찾아가 땅을 파헤치자 붉은 물줄기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 물을 양손으로 받아 마셨더니 혀가 짜릿하고 시원하여 이를 세상에 알려 화암약수의 시초가 되었다.
이 약수가 처음 발견될 당시만 해도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이 갑자기 흐려져 못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약수의 효능은 산화철탄산수로서 위장병과 피부병, 안질, 빈혈증에 좋으며 술에 취한 후 마시면 빨리 깨고, 밥을 지으면 색이 파랗게 변하여 부드럽고, 닭을 삶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미역을 삶으면 연하게 무르게 한다. 이 약수의 효험이 이처럼 큰 데에는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북쪽으로 꼬리를 튼 계곡 위에 동쪽을 향하여 약수가 터져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북바위(龜岩)
동면 소재지 구슬동천 입구 오른 쪽에 있는 바위로 화암8경 가운데 제2경이다. 둘레 6미터, 길이 6미터 가량의 자연석으로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서남쪽으로 기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거북의 명이 천년이 넘는다고 해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마을의 수호신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감투바위
거북바위 옆에 있는 바위다. 바위 모양이 마치 감투와 같다고 해서 생겨났는데, 정선군에서 배출한 인물 가운데 동면 출신이 많은 것도 바로 이 감투바위 덕 때문이라고 한다. 바위 뒤쪽으로는 구암사(龜岩寺)라고하는 절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맷돌바위
거북바위 건너편 마을 뒤에 있는 바위다. 바위 모양이 맷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맷돌바위는 건너편 거북바위를 수컷에 비유해 암 거북 이라고도 한다.

구슬동(九瑟洞)
동면 소재지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비파를 가진 일곱 명의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놀 때 신선바위에서 장기를 두던 태백산 신령과 오대산 신령이 비파소리에 현혹되어 이곳을 찾아와 함께 어울려 놀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구슬동은 불암사(佛岩寺) 위쪽의 큰 구슬동과 군의산(郡蟻山) 남쪽 작은 구슬동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큰 구슬동으로는 미사리재를 넘어 남면 유천(柳川)을 거쳐 남면 문곡리로 가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샛골(間村)
큰 구슬동 작은 구슬동 사이에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사잇골'로 부른 것이 변해 '샛골' 또는 '새골'이라고 했다. 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가호가 거주하였으나 모두 떠나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금직골(金織洞)
화암약수에서 큰 구슬동 쪽으로 약 1킬로미터 위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골짜기 안에 금직광산(金織鑛山)이라는 금광이 있었다고 해서 생겨난 지명이다.

싸내(米川)
현재 화암동굴 주변 상가를 이루고 있는 마을 이름이다. 오랜 옛날부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동천 냇물을 이용해 논(沓) 농사를 짓던 곳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천포(泉浦)
싸내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각희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샘물이 사계절 끊임없이 흐른다고 해서 '천포'라고 불렀다. 화암동굴과 가깝고 여름에는 많은 광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솔무덕(松亭)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해서 '솔무더기'부르게 되었고, 이 말이 축약되어 '솔무덕'이 되었다.

점불
옛날에 쇠를 녹여 호미나 낫, 부지깽이 등을 만들던 점부리가 살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6가호가 살았으나 정부의 화전정리 사업으로 모두 떠나고 지금은 마을 이름만 남아 있다.

오산(鰲山)
천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산재를 배경으로 해서 형성된 마을의 형국이 자라와 같다고 해서 '오산'이라고 한다.

좌사(坐沙)마을
오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면에서 정선쪽으로 흐르는 동천(東川)이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면서 모래토양이 많이 쌓여서 '좌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지마을과 양지마을 두 곳으로 이루어 졌으며, 월북한 제헌국회의원 최태규(崔泰圭)씨가 출생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화표동(華表洞)
동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임계면 덕암리로 통하는 421번 지방도로 변에 있는 마을이다. 화암에서 화표동과 소금강으로 갈라지는 입구에 화표주(華表柱)라 하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화표동'이라고 한다.

절골(寺谷)
화표동 북쪽 각희산으로 향하는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로 오랜 옛날 절이 있었다고 해서 '절골'이라고 한다. 절골에는 충청도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와 비슷한 수령이 천년이 넘는 노송이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소나무의 기원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한 후 일대에 많은 암자들이 들어섰다. 그 무렵 자장율사의 문하에 있던 스님 한 분이 이곳에 절을 짓자 자장율사가 친히 찾아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 소나무가 지금의 노송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자장율사의 혼령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옛날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부친상을 당하자 이 소나무의 굵은 가지를 잘라 관으로 쓰고 장례를 치루자, 소나무가 사흘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었고, 집안도 몰락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큰터(大基)
화표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화표동 중심마을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넓다고 해서 '큰터'라고 한다.

후원(後園)
큰터 동쪽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큰터 뒤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활개이
화표동에서 임계면 덕암리로 넘어가는 비슬이재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계곡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활과 같이 굽었다고 해서 '활개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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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정선군지(旌善郡誌』(1974. 정선군)
  2. 『정선의 향사』(1989, 정선군)
  3. 『화암팔경』(1993, 그림바위회)
  4. 『정선 동면 지명유래』(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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