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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의 전설  
    1. 장지온(張志溫)의 예지도적래(豫知盜賊來)
    2. 학(鶴)이 날아가버린 각씨 바위
    3. 불효자(不孝子)의 말로(末路)
    4. 농부(農夫)와 곰 이야기



 1. 장지온(張志溫)의 예지도적래(豫知盜賊來)

옛날 남면 무릉리에 학문과 덕행을 겸비하여 인근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온 장지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도를 깨우쳐서 앉아서도 원근의 일을 다 알고 앞날에 닥쳐 올 일들을 예언하여 주위 사람들을 감탄케 하였다.

그는 향청의 좌수로 추대돼 군(郡) 관아(官衙)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문득 군수에게 "집에 도적들의 화가 미칠 것 같아 잠시 다녀와야겠오"하면서 그 길로 떠나 혼자 걸어서 남면 무릉리에 있는 본가(本家)까지 50여 리 길을 걸어서 당도하니 시간은 초경(初更) 무렵이었다.

가족과 집안 사람들은 아무 예고도 없이 주인이 갑작스레 돌아 왔으므로 "어인 일로 이렇게 밤길을 급히 오셨습니까?"하니 오늘저녁 녹림객(綠林客)이 우리 집에 몰려 올 것 같으니 술과 음식을 많이 장만하라고 일렀다.

가족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부지런히 음식 준비를 하였다.

그런지 얼마 안되어 과연 10여명의 도적 떼가 들이닥쳐 재물을 마구 약탈하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태연하게 도적들을 불러 앉히고 마련하였던 음식으로 후대하였더니 도적들은 원체 굶주린 터이었으므로 도적질 할 것도 잠시 잊고 배불리 먹고 술이 취하였을 때 「내 이미 그대들이 올 것을 알고 일부러 읍에서 예까지 나와 이같이 대접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간의 일을 회개하고 각자 향리(鄕里)에 돌아가 양심을 바로 가지고 가족과 함께 열심히 일하면 어찌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없겠느냐, 하루속히 죄를 뉘우치고 양민으로 돌아가 마음 편히 살아라」하고 타이르니 도적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고 입을 모아 하나같이 "어른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흉년을 만나 기근(饑饉)을 참지 못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나 이제 어르신네의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하며 엎드려 사죄하였다. 주인은 다시 이들에게 엽전 백 냥씩을 나누어주며 "비록 많은 돈은 아니나 이를 생업(生業)의 밑천으로 하여 착실히 살도록 노력하라"하니 도적들은 더욱 감격하여 백배 사례하고 각자 흩어져 돌아갔으며 그 후 한동안 인근에서 도적의 무리가 없어졌다.
 *『정선의 향사』, 1981, 정선군


 2. 학(鶴)이 날아가버린 각씨 바위  

정선군 남면 낙동(樂同) 지방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많이 있고 바위의 형국은 모두 특징이 있어 이름이 붙어져 있는데 마을중앙의 학바위를 중심으로 주변에 신랑암 신부암(각시암) 시비암(몸종) 등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생활이 어려워 아주 가난하게 살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빈곤한지 평생 소원이 한번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는 것이 한이었는데 하루는 이곳에 찾아온 도승에게 부자가 될 집터 한 자리만 보아 줄 것을 간청하였더니 이윽고 도승은 30여 평 남짓한 집터를 정해주며 "여기다 집을 짓되 이 부근에 있는 바위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하고 도승은 사라졌다.

그는 도승이 일러준 대로 그 자리에 아담한 집을 짓고 5∼6년을 살자 과연 남부럽지 않게 가정이 부유해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이는 이제까지 자기가 살던 집이 비좁은 생각이 들어 좀 더 확장하고자 하였으나 집 옆에 있는 바위가 있어 증축에 방해가 되었다.

이 자는 집터를 잡아 줄 때 도승이 이야기한 바윗돌을 움직이지 말라는 철석같은 당부는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바위를 약간 들어 옆으로 옮기려 하자

바위 밑에서 백학(白鶴) 한 쌍이 길게 슬피 울며 날아올라 각씨바위 위에 올라가 앉으므로 깜짝놀라 바위를 옮기기를 중지하였다.

 그 후부터는 이의 살림살이는 다시 빈곤해졌으며 학 한 쌍 중 한 마리는 신랑암에 앉아 각씨바위에 앉은 학을 끔찍히 사랑하며 먹이를 날아다 주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므로 「각씨바위」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정선의 향사』, 1981, 정선군


 3. 불효자(不孝子)의 말로(末路)  

고려말엽 남면 어느 마을에 편모 슬하에 독자가 있었다. 그는 어찌나 불효하였던지 평상시에 어머니를 봉양치 않음은 물론 수년간 어머니가 병상에서 신음하여도 도박과 주색잡기에 정신을 빼앗겨 타지방으로 전전하면서 소식조차 없었다. 그 어머니는 급기야 자신을 원망하며 병사하고 말았다.

얼마 후 이 불효자가 마을에 다시 돌아왔으나 온 마을 사람들은 괘씸하게 생각하고 이를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이런 자를 마을에 두었다가는 온 마을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못된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마을에서 쫓아냈다.

마을에서 쫓겨난 이는 갈 곳이 없어 사방으로 유랑하다가 태백산 어느 암자를 찾아가 주지승에게 수도하기를 간청하였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주지승은 이자의 관상을 보니 사람됨이 거칠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기거를 승낙하였다.

그 후 3∼4일이 지나자 또 어떤 한 장정이 암자를 찾아와 주지승에게 수도할 것을 몇 일에 걸쳐 애원한 끝에 주지승은 그에게도 기거토록 승낙하였다.

이후 주지승은 두 장정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 나중에 찾아온 장정은 참으로 과거 자기가 도둑질을 하면서 생활하던 것을 뉘우치고 오직 수도에만 열중하였으나 이 불효자는 회개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것을 본 주지승은 이를 징벌하기 위해 하루는 두 사람을 한자리에 앉혀 놓고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내게는 딸자식이 하나 있는데 나는 사정이 있어 이 암자를 떠나야겠는데 너희 두 사람중 한 사람은 내 딸과 결혼하여 이 암자에서 살고 한 사람은 나를 따라 다른 사찰에 가서 수도를 계속하자"고 말하니  장정은 주지승을 따라 갈 것을 간청하였으나 불효자는 미모의 딸에게 혹하여 주지승에게 결혼을 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주지승은 두 말없이 허락하고 그 날로 장정을 데리고 훌쩍 암자를 떠나 버렸다.  한참 길을 가던 주지는 장정에게 "내가 깜박 잊어버리고 염주를 절에 두고 왔으니 네가 속히 암자에 돌아가 찾아 가지고 오너라"하였다.

장정은 즉시 "네" 하고 급히 달려서 암자에 다달았으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처녀는 간 곳이 없고 여산 대호가 불효자를 죽여 포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깜짝 놀란 장정은 황급한 마음으로 가까스로 스승의 염주를 찾아가지고 돌아가 스님에게 "스님 큰일났습니다.  그자는 호환을 당하였고 따님도 필경 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하니 주지승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태연한 자세로 "인생은 가련하나 불효자의 소행이 괘씸할 뿐만 아니라 전혀 지은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탐욕을 일삼으니 인과 응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잊어버리고 가자""따님은 어찌 되었습니까?""실은 내게 딸이 있을 리 없다.  너희를 시험코자 호랑이를 딸로 둔갑을 시켰다"고 하며 묵묵히 앞서 걸어갔다.

장정은 더욱 주시승을 보기 송구하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고 열심히 수도하여 후일 훌륭한 승이 되었다고 전한다.
 *『정선의 향사』, 1981, 정선군


 4. 농부(農夫)와 곰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 남면 무릉리(武陵里)에 이씨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이 농부의 집에서는 한우 3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소먹이를 담아주는 여물통이 삭아서 소먹이를 담아 줄 수가 없어 이를 구하기 위해 하루는 지게가지에 점심을 싸서 매달고 도사골(사북읍 사북리에 있음)로 목적지를 정하고 풀이 자기 키를 넘는 숲을 헤치며 큰 나무를 찾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산 중턱에서 큰 나무를 찾았는데 밑 둘레가 한아름 정도 되는 것을 베어, 여물통을 거의 완성할 무렵 우연히 산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니 큰 어미곰 한 마리가 새끼곰 두 마리를 데리고 지장천(地藏川)에서 가재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농부는 그만 벌컥 소리를 쳤더니 큰 바위를 들던 어미곰은 깜짝 놀라 양손으로 잡았던 바위를 놓고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자 다시 바위를 일구어 보니 새끼 두 마리가 바위 밑에 깔려죽어 있었다.

어미곰은 바위를 재쳐 놓고 죽은 새끼곰을 바위 위에 세웠다. 죽은 새끼곰은 세워놓으니 쓰러지고 쓰러지니 어미곰이 다시 세워놓고 이러기를 수번을 계속하자 이것을 보고있던 농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웃음소리를 들은 어미곰은 화가나 번개같이 달려와 농부를 물려고 하자 농부는 기절을 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도망하여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보니 좌측 눈과 얼굴엔 살이 떨어져 나갔다

그 후 농부는 갖은 약을 다 써서 상처가 완전히 낳은 다음 타지역으로 외출을 할 때면 동네 아이들이 떼를 지어 따라 다니며 저기 곰한테 헐치기 당한 영감이 오신다고 놀려대므로 이후부터 이 농부는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정선의 향사』, 1981, 정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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