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의 아리랑 할머니 정성애씨(오른쪽)와 전두한씨 부부봄바람이 부는 날이면 아리랑을 찾아갔던 사할린 땅에서 젖은 감동이 찡하게 다가온다.
내가 징용의 땅으로 불리는 사할린의 한인을 찾아나선 것은 95년 봄의 일이었다. ‘신나라레코드’에서 제작하는 ‘해외동포 아리랑’ 작업을 맡아 러시아 한인들의 아리랑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까지만해도 러시아의 아리랑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러시아 땅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아리랑이 아니라 모스크바나 성 페테르스부르크 등지의 거리악단이 연주하는 아리랑 정도였다. 정보는 고사하고 자료 조차 충분치않아 나의 발걸음은 막막했지만, 아련한 그리움과 설레임으로 시작되었다. 아리랑을 찾아 숱하게 돌아다니면서 몸에 밴 생각, 한민족이 흘러간 곳에는 반드시 아리랑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세시간 여 만에 도착한 사할린의 봄은 온통 바람 뿐이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부터 다가온 스산한 바람은 징용 1세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순간 그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분명히 아리랑을 보았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분명 맺힌 소리가 술술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 앞에서 차를 기다리다 만난 노인에게 아리랑을 찾아 왔다고 하자 그 노인은 대뜸 내 손을 꼭 붙들고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밥을 짓다말고 나와서 반기는 부인과 함께 감복하기라도 한 듯 아리랑을 잘 한다는 사람을 백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적어 주었다. 밥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쳐와도 안중에 없었다. 하나같이 유즈노사할린스크시 한인들의 잔치 때면 민요를 잘 부르는 노인들이라고 했다. 그 주소와 이름을 들고 사할린주 곳곳의 아리랑을 일주일 넘게 찾아다녔다.
전라남도 순창이 고향인 김동식 할아버지는 아리랑에 모처럼 흥이났고, 강릉 태생으로 사할린 고려악단의 단장을 했던 전두한 할아버지는 아리랑 엮음을 부르며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징용의 한이 서린 사할린의 아리랑은 눈물이었다. 일흔 두 살의 정성애 할머니가 부르던 아리랑을 두고두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그 땅에 못가고 내 여기 사나
우리 영감님은 왜 왔다던가
나만 혼자두고 자기만 갔네
경남 삼천포시가 고향인 할머니는 열여덟살 때 사할린 도로샤흐조로스끄 탄광으로 징용당한 남편을 따라왔다. 만고풍상을 겪으며 미우나 고우나 하늘처럼 떠받들던 남편은 내가 찾아오기 보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우리 영감님…”을 부르면서 목이 메었다. 끝내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르면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죽기 전 고향 땅에 돌아가겠다며 고희가 넘도록 러시아 국적도 갖지 않고 살아온 할머니는 목소리라도 고향 땅에 실어보내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리랑을 부르고나니 속이 풀린 것 같다는 할머니는 나를 향해 한국이 통일되어 큰 나라가 되면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참으로 오랜 세월 흰 옷에 붉게 배어난 소리없는 아픔을 어루만지며 살아온 모습이었다.
아리랑 아라리요 서글픈 가락에 귀익은 사할린의 일주일은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사할린을 떠나와서도 내내 가슴 적시던 아리랑. 그 때 채록해 만든 한 장의 음반을 들을 때 마다 정성애 할머니의 아리랑이 너무 큰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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