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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희망의 선율  
아리랑,희망의 선율  

2006/04/04 오전 9:05 | 일본 신문 속의 한국  

아사히 신문 2006년 4월 4일(화) 조간
7면 아시아

아리랑,희망의 선율
탈북 피아니스트 "자유"를 연주하다

1 노래

"마지막 연주는 아리랑입니다.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입니다."김철웅(金哲雄・31) 씨는 이렇게 말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아리랑이래."객석의 어린이들이 기쁜 듯이 외친다.
서울시의 문화회관 홀.그것은 들은 적이 없는 아리랑이었다.시작은 음을 확인하는 듯이 조용히.점점 거세게 재즈처럼.허공을 바라본다.허리를 들어올려 건반을 강타.손가락 움직임이 빨라 보이지 않는다.
청중은 숨을 죽였다.그래도 불과 30명.김 씨는 땀을 닦으며 깊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한 사람 빠짐없이 박수를 쳐 준 것이 보였어요.오늘 연주회는 쭉 기억에 남겠죠."
김 씨는 평양 출신.탈북자다.2001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건너가 2003년에 기독교 관계자의 협력으로 한국에 왔다.아버지는 조선노동당 간부.어머니는 교사.국민의 1%라고 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8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000배 가까운 경쟁율을 뚫고 평양음악무용대학에 들어갔다.
인생을 바꾼 것은 1995년,러시아에 음악 유학한 것이다.대사관과 대학을 왕복하는 감시가 딸린 생활이었는데, 어느 날 갑작스런 휴강으로 감시도 없이 다방에 들어갔다.어,지금 흐르고 있는 피아노 곡이 뭐지? 가게 주인이 "리차드 크레이더만이야,모르니?" .부드럽고 우수를 띤 팝이었다.
평양에서는 19세기 말의,예를 들면 리스트 이후의 외국 음악이나 유행가는 "미국적인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퇴폐주의"로 보고 배울 기회 같은 것이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이 무너졌다."이런 자유스런 음악을 하고 싶다,더 듣고 싶다."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에서는 오지에서 재목을 날랐다.부드럽고 가는 손가락이 거칠어지고 갈라졌다.위조 여권으로 한국에 왔다.그러나 남쪽에서는 편견이 따라다녔다."북한에도 피아니스트가 있나?","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기나긴 공백 기간.초조감도 있다."내 실력은 이런 게 아니야."
겨우 대학 강사직을 얻고, 연주회에도 초대받게 되었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게 되어 아리랑을 편곡하려고 결심했다.어렸을 때부터 장단을 맞추면서 친구들과 노래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곡이다.평양의 정적.한국에서의 밝고 자유스런 기분.마지막 부분에 힘차게 미래의 희망을 음으로 호소한다.
"희망이요? 그건 남북통일이에요.평양의 부모님과 재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의미는.....유래는...수수께끼

아리랑이 남북한에서 공통인 것은 분단전인 20세기 전반,일본 식민지 통치하에서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다.더구나 멜로디와 가사가 단순하여 고통과 저항,가족과의 이별,통일에 대한 소원,단결의 염원을 담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0년대에 들어가면 스포츠 국제대회의 남북 동시 입장시에 국가 대신에 아리랑이 연주되었다.남북이 통일되면 아리랑이 새로운 국가의 최유력 후보가 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아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명.가사에 나오는 "아리랑 고개"도 실제로 있는 건지 가공의 장소인지 모른다.남북한에서는 아리랑이라는 말을 노래를 초월하여 "민족의 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아리랑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3월에는 한국에서 "아리랑"이라는 이름의 담배도 발매되었다.
유명한 선율의 아리랑은 원래 서울 주변의 경기도의 민요가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한국내에서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서 600년전,북동부의 강원도의 민요에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그 강원도의 삼척시에 "아리랑 고개"라는 고갯길이 있다.배용준 주연 영화 "4월의 눈("외출"의 일본어 제목)"의 로케 장소에서 도보로 10분.고개의 높낮이 차는 20미터 정도이다.
옛날에는 검붉은 진흙길이었다.옆 마을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단 하나의 길로 가난한 장꾼이 노천시장에 마차 등으로 물건을 싣고 나르곤 했다.
그 지방의 노인회장,홍인표(洪寅杓・78) 씨가 말했다. "고개의 유래는 모른다.다만,옛날에는 모두 가난했다.짐을 등에 지고 리어커를 끌고 고개를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아리랑이란 그런 고생을 가리킨다."
1950년의 한국전쟁에서 홍 씨는 국군에 입대했다.마을안을 행진하고 있을 때 짐을 인 어린이와 지나쳤다.울면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병사들이 무심코 멈춰섰다.누구나가 다 슬펐다.그 생각이 아리랑과 겹쳐진다.
강원도 정선군에는 창(唱) 과 같은 "정선 아리랑"이 전해진다.탄광의 폐쇄로 폐교가 된 초등학교 건물을 이용한 "아리랑 학교" 교장인 진용선(秦庸瑄・ 43) 씨는 손꼽을 만한 아리랑 연구가이다.노인들의 육성을 테이프 400개를 모아, 올해는 카자흐스탄까지 동포의 아리랑을 수록하러 갈 계획이다.
진 씨는 어느 날,머리에 떠올랐다. 가사는 히로애락으로 다양하지만 동사에는 현재형이나 미래형이 많다."고개를 넘어간다고 하지만 넘어갔다고는 노래하지 않는다. 지금의 괴로움을 참아내어 미래를 향한 희망을 노래한다.우리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이치카와 하야미・市川速水)

곡은 100종류,가사는 3000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가장 유명한 가사와 선율은 "원본 아리랑"이라 불린다.1926년 10월,일본의 지배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암시한 영화 "아리랑"이 서울에서 개봉되었다.그 주제가로 사용되어 한반도 전체와 일본,중국에서 히트했다.영화는 나운규 감독이 민요를 편곡하여 가사를 붙였다고 하는데,템포도 선율도 지금과는 조금 다르며,노래가 불리워지는 사이에 가락이 정착한 것 같다.
멜로디도 가사도 조금씩 다른 전통적인 아리랑은 100이상,가사는 3000을 넘는다고 한다.작년에 한국에서 발표된 CD"아리랑의 수수께끼"(신나라사)에 해설을 쓴 음악 프로듀서 이철우(李喆雨・67) 씨는 "민요 같지만,실은 기승전결이 명확한, 현대의 유행가에 가까운 요소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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