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화 <아리랑> 필름 되찾기 (ar

영화 <아리랑> 필름 되찾기

영화 <아리랑>필름 되찾기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암울한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한가닥 희망이 되었던 영화 '아리랑' 필름이 우리나라에 없고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내 가슴 아프다.

더더욱 안타까운 일은 '아리랑' 필름을 두고 지난 5월 부터 각 언론매체를 통해 정부 여당 관계자가 보여준 태도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앞서 '아리랑' 필름 반환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아리랑' 필름 반환 문제를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과 함께 한·일 문화 교류, 문화 개방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일본 문화를 개방하는 대신 잃어버린 '아리랑'을 싸 짊어지고 온다니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러나 방일을 앞두고 이 문제가 잠잠해져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방일 중이나 방일 후 한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리랑' 필름 얘기는 한 마디도 없다. 마치 거대하게 밀려드는 일본 문화의 홍수에 '아리랑' 필름 얘기는 까마득히 묻혀버리는 것만 같다.

'아리랑'은 1926년 춘사 나운규(春史羅雲奎 왼쪽 사진)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무성영화로, 주인공 영진을 통해 암울한 현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몸부림치는 조선 젊은이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한국 영화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기록되고 있는 '아리랑'이 불행히도 우리 손에 없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리랑'뿐만이 아니다. 192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 만든 영화 필름이 우리나라엔 한 편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전쟁에 광분한 일제가 폭약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수거해갔다는 얘기도 있고, 그후 6·25때 손실되었다고도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 하나 필름 따위를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영화관 구석에 나뒹굴던 필름들은 헐값에 고물상에 팔려나가 시골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의 테두리로 잘려 나갔으니 '아리랑'을 아쉬워함은 인멸(湮滅)을 후회함과도 같을 것이다.

'전설의 필름'으로 불리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일본에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지난 70년대 초 부터 였다. 오사카에 사는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 오른쪽 사진 사진제공 시사저널 )씨가 '아리랑'을 비롯해 '장화홍련전' 등 20∼3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든 필름 60여편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부터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경찰 의사로 근무했던 아버지(安部鼎)의 수집품을 정리하면서 조선 영화 60여 편의 목록을 만들었고, 그 중 쉰 다섯 번째에 '아리랑'이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 모두에게 눈이 번쩍 뜨일만한 낭보였다.

광복 직후부터 '아리랑'을 찾기 위해 나섰던 북한측은 발빠르게 조총련 영화제작소 여운각 소장을 앞세워 아베씨로 부터 '아리랑' 필름을 돌려받기 위해 은밀한 작업을 벌였다. 우표 수집가이기도한 아베씨에게 해방 후 북한에서 발행된 우표 셋트와 개성 인삼을 선물했고, 시가 천만 엔이 넘는 소니 편집기와 언제든지 자유롭게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특별 방문권을 기증하며 물량공세를 펴왔다. 이보다 늦게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초 당시 MBC 제작위원이던 정수웅 감독이 처음으로 나선 이래 영화진흥공사, 영상진흥원, 각 방송사와 신문사가 나서서 반환 의사를 타진했고 필름을 찾기위해 애를 썼다. 94년엔 남북 영화인들이 모여 '우리 민족영화를 발굴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고 최근엔 우리나라와 재일교포 사회에서 '아리랑' 필름을 되찾기 위한 서명운동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호들갑을 떤들 뭐하랴. 처음에는 필름을 돌려줄 듯 호의를 보이던 아베씨가 십 년이 지나도록 무슨 연유에선지 필름 공개조차 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환 의사를 밝혔다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말을 번복해왔다. 더욱이 아베씨가 정리했다는 목록만 보았을 뿐 필름을 직접 본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 과연 아베 요시시게씨가 영화 '아리랑' 필름을 정말로 소장하고 있는지 조차 미심쩍어지는데 우리는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필름의 조기반환을 추진하겠다고 이왕 큰소리치고 나섰던 정부라면 남의 일인양 쉬쉬하고 덮어두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차분하게 팔을 걷어 부치고 과연 아베씨가 정말로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돌려줄 마음이 있는지 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아베씨가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면 필름을 돌려주기위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 그리고 수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안된다면 필름을 복사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필름은 골동품과 달라 지금의 기술로는 얼마든지 복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리랑' 필름을 잃고서 애통해하는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리랑' 필름을 찾겠다는 떠벌림이 아니다. 일제하 암흑시절을 밝혔던 불멸의 영화 '아리랑'을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리랑 정신을 찾고자하는 굳은 의지인 것이다.

글/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