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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자-아버지의 대를 이은 기능보유자  
 
 정선아리랑 하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소리를 연상하지만 젊은 소리꾼도 있기 마련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선아리랑 소리꾼들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명창은 김길자다.

 김길자는 1968년 북면 고양리에서 김병하와 전제옥의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정선아리랑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자녀들 가운데 소리가 가장 뛰어난데다가 국민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김병하와 김형조와 함께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 참가,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그에게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앞에 앉아 장구 가락에 맞춰 정선아리랑을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는 소리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위에서 소리를 잘한다고 칭찬을 했지만 아버지만은 늘 까다로운 평론가가 되었다. 칭찬에 인색한 나머지 한 마디 던지는 말이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가르칠 때도 비교적 엄하게 배웠다.

 어린 나이임에도 정선은 물론 전국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가을이면 정선아리랑제에 찬조 출연하고 아리랑이 불리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다니며 정선아리랑을 시연했다. 그러다 보니 수상 경력 또한 나이에 비해 화려했다.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와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정선아리랑으로 각종 상을 타는데 한몫을 했다. 마침내 1992년 정선아리랑 전수장학생으로 지정되고, 1997년에는 전수교육보조자로 지정되어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다져갔다.  

 김길자는 목소리가 맑아 음역이 높은 정선아리랑을 잘 소화한다. 스스로도 애정편 가사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만의 소리로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가사를 애절하고 때론 정겹게 표출해냈다.

 시집을 가기 전까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중인 아버지 뒷바라지에 전념하면서 소리에 깊이가 더해졌다. 그 후 춘천으로 시집을 가 살면서도 매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정선아리랑 창극에 출연하고, 전수를 위해 노력을 하는 등 모범을 보였다. 그리고 2003년 4월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자신의 가장 큰 소리 스승이자 아버지인 김병하의 맥을 이어 계보를 다져가고 있다.

 김길자는 춘천에 살면서 정선아리랑의 다양성을 시험하고 있다. 춘천 홍천 등지로 빠르게 유입되는 경기민요 속에서 정선아리랑의 세계를 보여주며 올찬 맥을 지켜가도 있다.

글/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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