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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떼꾼 송문옥씨 생각
 내가 떼꾼 송문옥씨를 처음 만난것은 1990년 가을 이었다. 정선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가 훤히 내다 보이는 갈금마을에서 였다. 험하디 험한 두메산골인 정선사람들이 옥수수밭이나 갈고 가을이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봐둔 송이나 거둬 오는게 고작이었을 것이라는 케케묵은 생각 때문인지 송씨와의 첫 만남은 무척 남달랐다. 우리시대 마지막 떼꾼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다.
큰 둔테안경을 낀 송씨의 얼굴은 꺼칠했고 저고리 동정은 때가 절어 검검했다. 그런데도 단단히 감겨있던 여든 넷 기억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냈다.
그는 홍천군 내면에서 테어났다. 태어난지 얼마안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두살난 그를 혹처럼 달고 인제읍 어느 홀아비 사립문에 들어섰다.
귀가 자라도 학교 문턱은 아예 구경도 하지 못하고 툭하면 의붓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던 그는 결국 열두 살 되던 해에 집을 나왔다. 그때부터 양양 강릉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하며 고되고 고된 농사일도 잔벼가 굵었다.
해도해도 티가 나지않는 남의 집 살이를 청산하고 정선땅에 발을 디딘것은 스무살 때였다. 여량가면 일거리가 좀 있다는 소문에 큰 맘먹고 들어왔다.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찾은 정선은 낯설었지만 곧 정이 들었다. 호적에 그가 여량에서 태어난것으로 되어 있는것도 이 때문이다.
여량으로 들어오던 날부터 열아홉 살 난 엄씨라는 여자와 눈이 맞아 혼럐도 치루지 않고 살기 시작했다. 온 동네가 수근댈 정도로 당시로선 아주 파격적인 일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 이던 그는 뗏목에 딸린 일을 배우며 스물다섯에야 뗏목을 탔다. “그까짓거 벨 기술이고 모고 없다.”고 눅여 말했지만, 겨우내 강가에 쌓아둔 나무를 엮어 동강 물길을 따라 내려 가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영월까지 험한 골짜기를 빠져 나가는 ‘골안떼’는 늘 위험이 따랐다. 강바닥에 온통 삐죽삐죽 솟은 돌 뿐이었고 물이 조그만 줄어도 뗏목 바닥이 그 돌을 훝으며 지나가느라 부서지기가 일쑤였다. 골안떼를 타다가 죽은 떼꾼은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동강을 힘겹게 내려오면 뒷사공을 돌려 보내고 골안떼 서너바닥을 한 바닥으로 합쳐 영월을 떠났다. 강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충주를 빠져 나가는데 가지는 꽤 험한 여울도 많았다. 더구나 영월 정양리에 놓인 댐을 넘어서 가는 일은 목숨을 건 한판 내기였다. 일정시대 말에 화력발전소에서 쓰는 물을 대려고 만든 댐이지만, 뗏목이 지나가라고 내놓은 수문 하나로 빨려들듯 몰려나가는 강물에 내노라하는 앞사공인 송씨도 아찔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만큼 정양에서는 많은 떼꾼들이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해에 대 여섯 번, 물이 많은 때는 아홉 번 까지 한 뗏목살이는 험난한 물굽이와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동녘땅을 떠돌아다니며 배운 느린 아라리, 스무살 먹어 여량땅에 들어와 배운 정선아라리를 맘껏 불렀다. 서울까지 한달 남짓한 지루한 남한강 물길위에 청승맞도록 가득 풀어 놓았다. 물굽이와 싸우다 어둑살이 깔리기 시작하면 강에서 가까운 주막에 떼를 대고 작부들과 어울려 거나한 술판도 벌였다. 뗏목을 운반해주고받는 ‘고전’은 “떼돈번다”할 정도로 꽤 괜찮아 나중일은 아예 걱정하지 않았다. 떼 한번 더 타면 그만이었다.
양평을 지나 물살이 느릿해지면 술병을 싣고 배에 접근하는 들병장수 색시를 떼에 싣고 서울까지 데려가기도 했다. 서울서 마저 받은 고전도 여자탓에 남아날 리 없었다. 객주와 색주가 붐비는 삼개나루 광나루에서는 매번 밤새워 투전판에 끼어 들고 색시들과 어울려 어깨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고치에서 명주실 빠지듯 자신도 모르게 아라리가 흘러 나왔다.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의 넋이 빠질 정도로 그의 아라리는 기가 막혔다. 그리곤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왔다.
 송씨는 여량에 오면서 만난 엄씨부인과 환갑되기 얼마 전 부터 함께 살았던 전씨부인 말고는 그의 곁을 스쳐간 여자들의 성씨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뗏목을 타고 숱한 세월을 지났듯이 여자들도 그에겐 지나쳐갔을 뿐이다. 하지만 누구 한사람도 이러쿵 저러쿵 도덕의 잣대를 갖다대지 않았다. 그보다는 뗏목일에 신바람난 그에게 「떼강아지」라는 말을 달아 주었다.
백여 미터 되는 뗏목을 이십 여 년간 탈없이 가져간터라 목상들이 앞다투어 부르던 송씨는 쉰 아홉이 되어서는 마침내 뗏목일에 손을 놓아야 했다. 국토개발이라는 이름아래 칠십년대 초반 첩첩산중인 정선까지 기차가 들어오고 제무시 트럭이 드나들자 강물을 이용한 목재의 운반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후로 이십년 가까이 그는 서울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마침내 이 시대에서 가장 뒤쳐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쓸쓸한 송씨의 삶에 끼어 들었던 나는 아예 하루를 저당잡혔다. 내친김에 아라리를 들려달라고 졸라대자 한동안 끊었던 술을 찾았다. 맹숭맹숭 멋적게는 못한다며 술을 들이켰다. 그리곤 끝 모르는 아라리가락을 풀고는 남한강 긴 긴 물살에 지긋이 휩쓸리는 듯 했다.
못먹는 막걸리 한잔을 내가 마셨더니만
아니나던 색시 생각이 저절로 난다.
송씨와의 첫 만남은 이른 아침부터 갈금마을, 아우라지, 경노당, 고려다방 등지를 오가며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지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강물에 떼 띄우고 노래에 인생실어 떠나듯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남한강 물길을 오가며 곳곳에 심어놓은 아라리 가락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전파되어 또 다른 아리랑을 낳았다. 그럼에도 그 어느 누구하나 그의 삶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정선떼꾼 송문옥씨의 여든다섯 평생의 삶은 이 때문에 더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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