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 아리랑의 정체성과 현장성(제7회 정선아리랑심포지엄 발제논문) 제7회 정선아리랑심포지엄 논문
2001년 10월 8일, 정선농협 3층
아리랑의 정체성과 현장성
이창식(세명대학교 미디어문학부 교수)
Ⅰ. 문제 제기
지금 여기 ‘아리랑’이 무엇인가. 아리랑 민요학은 가능한가. 지역문화와 아리랑의 지역성은 관련이 있는가. 이런저런 물음 속에 민요학에서 아리랑 갈래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아리랑의 문화적 표상성(表象性)은 민족문화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류문화유산적인 가치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리랑의 상징성은 한민족문화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아리랑의 정체성(正體性)은 한국 민요의 역사성과 민속성 그리고 현재성 등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학의 이론적 정립에 대한 노력은 미진한 것도 사실이다. 아리랑의 고유성과 상징성에 대한 연구는 보다 거시적인 문화학 입장과 미시적인 시학적 담론이 동시에 요구된다.
아리랑을 학술논쟁의 화두로 삼아 논의할 때 기왕의 관심이 낭만적 표현주의에 매달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리랑에 관한 연구사를 재검토해야 되겠지만 전통적 민요학이 아리랑 읽기의 이해를 통해 민족적 뿌리 찾기의 확장을 추구했다면, 지금 여기의 아리랑 탐색은 관념 위주의 민족성보다는 현실적 삶에 있어서 실천적 화해와 수행적 ‘상생(相生)’을 실현 가능성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랑의 새로운 민요학적 접근은 놀이 이론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아리랑의 새로운 길 찾기는 문화이론이 전제된 놀이 이론이 한 대안이라고 본다.
아리랑의 정체성 연구는 건강한 민족미학의 시각에서 차원 높은 예술론과 보편적 글쓰기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민요 연구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듯이 아리랑 글쓰기도 달라져야 한다. 아리랑의 활성화 대안이 역동적인 민족예술학이면서 한민족문화(韓民族文化)의 뿌리 찾기에 두는 것도 민요 연구의 또 다른 시각일 수 있다. 민요의 연구방향은 최근 민요의 활용 방안에까지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등학, <민요의 연구사와 연구방향에 대한 논의>, (《반교어문연구》제10집, 반교어문학회, 1999.) 참고.
무엇보다 실천 위주의 문화운동이면서 지역문화에 기반을 둔 취향문화(趣向文化)에 부응하는 소리문화운동이어야 한다. 지역 모순, 환경 모순, 민족 모순, 교육 모순 등의 오늘날 패러다임의 문제도 아리랑론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 관련 전승물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는 미시적인 개별연구가 지속되면서 보다 거시적인 문화 담론연구가 절실한 것이다. 이 글은 후자의 아리랑 문화론적 입장과 인문학적 활인론(活人論)의 관점이 강조된 셈이다. 정대현 외, 《표현인문학》, 생각의 나무, 2000, pp.325～381 ‘성기성물(成己成物)론’ 참조할 것.
Ⅱ. 아리랑의 정체성, 그 노래문학의 시학적 재인식
아리랑은 매력적인 민요인가. 아리랑은 한국민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 범장르성이 있는가. 아리랑은 소리문학의 정체성을 지니는가. 앞질러 말하면 아리랑에 대한 지나친 민족주의적 기대감 때문에 열정적인 글쓰기가 생각보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의 미학성과 독창성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꼼꼼하게 챙겨 놓은 실천방안론이 별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리랑 사설의 본질론 또는 상징론부터 다시 따질 필요가 있다.
아리랑은 질긴 생명의 소리다.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꾼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부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민중의 삶에 뿌리내려 투박하지만 지게목발 장단과 물박 장단에 맞춰 자위적 기능으로 불려진 중치(명치끝) 또는 ‘똥창’에서 우러나는 울림과 어울림의 소리다. 중치가 메이고 속이 꽉 찬 상태에서 나오는 육성이다. 생득적인 육성은 민중의 소리문학 곧 표출방식의 노래문화로서 생활 속에 자리잡게된 요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라리를 부르면 일을 하는데 힘이 들지 않고 오히려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소리현장에서 가창자(歌唱者)들과 어울려 보면 아리랑이 나름대로 정서를 자극하는 놀이 도구임을 느낀다. 아리랑이란 말만 떠올려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더욱이 묘한 환상에 빠져드는 소리의 본향이 있다. 아리랑의 향수성은 고향 이미지와 모성적 회귀의 정서를 연관짓는 것이다. 산과 물, 사람이 더불어 살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소리가 아리랑에 다름 아니다. 아리랑의 소리미학은 이런 투박한 순연성(純然性)과 시골스러움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순연성은 아리랑의 가장 소박한 성향이다.
아리랑은 열린 사회에서 신명(神明)의 소리다.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북돋는 사설이 많다. 아리랑은 닫힌 사회에서 해원(解怨)의 소리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병이 날 것이라는 한 맺힌 응어리가 사설에 나타나 있다. 세상살이 중에 사랑하고 놀이하고 이별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나는 님은, 시적 화자 또는 노래하는 이에게는 정서 표출의 대상이다. 그 님에 대해 응어리지고 매듭진 안달의 한을 푸는 노래부르기가 기본적인 아리랑의 구연방식이다. 마음에 앙금진 수심(愁心)이 밤하늘의 별보다 많다고 하였다. 이를 자연스럽게 여과하는 한풀이가 아리랑의 속성이다.
그러나 이는 어두운 시기에 나타난 현상이고, 실제 삶터나 놀이판에서는 오히려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이창식, ‘아리랑’, 《한국문화상징사전》2, 동아출판사, 1995.
아리랑의 놀이적 성격도 다시 짚어야 한다. 아라리 가락은 여성들의 바가지 물박장단에 따라 맛과 멋을 보탰다. 남성들의 지게작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소리의 구성을 조절하였다. 지게 소리와 물바가지 소리는 올골차며 신명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게의 놀이도구는 소리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악기이며 물바가지 역시 울림의 원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속에 건강한 율동미와 어깨 들썩임이 있다.
아리랑은 지역 민요의 음악적 기층성(基層性)과 토속성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정선과 진도, 밀양의 3대 아리랑을 전통민요 아리랑으로 규정할 때, 이들은 계승자의 생업 공간인 삶의 현장과 밀착되었고, 그 풍토의 원형성을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밀양아리랑은 씩씩하여 ‘깨어지는’ 흥겨움이 있고, 진도아리랑은 구성져져서 ‘정한’ 맛이 있고, 정선아리랑은 유장하여 ‘흘러내리는’ 신명이 있다. 밀양아리랑은 기교로움와 화려함이 있고, 발랄함과 뚝뚝함이 묻어 있다. 그런데 정선아라리는 서정적 유장성과 애처로움이 배어 있다. 진도아리랑은 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지역의 풍토적 소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랑의 전승과 연행에는 토착성과 지역적인 현실성, 민간 전승다운 전통성, 그리고 주어진 지역 사람들의 편향성이라는 속성이 반영되었다. 김열규 (《아리랑…역사여, 겨레여, 소리여》, 1987.)와 김연갑, 《아리랑 그 맛, 멋, 그리고…》, 집문당, 1988, 강등학 (《정선아라리의 연구》, 집문당, 1988)등은 나름대로 아리랑의 특성을 집약하여 드러내고자 하였다.
하늘의 소리, 흙의 소리로서 ‘애국가’ 이상의 역할을 한다.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조, 밀양아리랑은 정자소리조,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를 어느 정도 닮아 있는 데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흙의 소리로서의 아리랑은 밭과 논, 강과 산에서 부른 일노래며,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부르던 굿노래다. 또 놀이판에서 부르던 놀이노래이기도 하다. 상생적(相生的) 서정성은 땅의 소리로서 인간의 내면화를 형상화한 아리랑이 지녔던 아름다움의 일면이다.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정선아라리에는 강원도적 서정의 아름다움이 있다.
설화에서 아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예는 찾을 수 없다. 설화의 현장에서 아리랑에 얽힌 사연을 들을 수 있다. 북한에서는 ‘성부와 리랑’의 설화와 대원군 아이롱 설화에서 아리랑 관련설을 찾고 있다.
엄하진, 《조선민요의 유래》, 예술교육출판사, 1992, pp.189～194.
그러나 우리는 이른바 하늘, 땅, 사람의 삼재(三才)를 소리로 집약하여 표현한 민족이었다. 아리랑의 원형은 문화층위에 따라 전파와 변이로 확장되어 갔다. 근대민요, 신민요, 통속민요 등으로 변신이 다채로웠다. 여기서 아리랑은, 일차적으로 전통민요이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적 소리로 자리잡게 된다. 아리랑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문화적 독자성과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초역사적 소리’라는 데에 그 위상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아리랑은 구술과 암송에 의한 전승, 자연스러운 습득 등과 같은 민속성 외에, 공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곧 민족사의 상징적 구비전승물(口碑傳承物)이라는 데서 민족혼의 대명사다. 아리랑 자체는 민족미학의 건강한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의 발원지는 강원도 정선으로 흔히 알려졌다. 그래서 정선아라리는 아리랑의 탯줄로 규정된다. 다만 강원도에서는 아리랑보다 아라리가 지역적으로 느끼고 있고 역시 ‘아리랑’의 용어에는 타령계의 유흥성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강원도에만 약 500종의 아리랑이 전승되고, 밀양, 진도, 부산, 원산 등의 아리랑이 전승되고, 밀양, 진도, 부산, 원산, 연변 등의 아리랑에 정선아라리의 사설이 접합되어 있는 데서 그 발원지설이 입증된다. 고려 유신들이 망국한(亡國恨)을 읊었다는 정선아라리는 뭇사람이 부르는 연정가(戀情歌), 의병과 광복군이 부르는 항일가(抗日歌)로, 때로는 특정 집단이 부르는 소망가(所望歌)로 확장되면서 소리판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아리랑에 대한 공동체 의식에서,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의 남북한 단일 선수단가(選手團歌)로까지 채택되었다. 이는 소리의 원형에서 오는 공감대의 형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가장 애창하는 소리라는 데 이의 가 없다. 아리랑의 구비문학적 최대공유인자는 민족시가로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은 한민족문화를 표상하는 소리요, 제2의 애국가이므로, 누구나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 영역 또한 남북한 구분 없이 어디에나 있다. 안기영의 <그리운 강남>은 남북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제한을 받았던 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서는 여전히 아리랑의 공유성을 확인하게 한다.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여…….”
멀리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아리랑이 살아 숨쉬고 있다. 아리랑 부르기는 음주가무했던 동이족의 기질과도 무관하지 않다. 박민일, 《한국 아리랑 문학연구》(강원대출판부, 1989)와 박민일, 《아리랑 자료집》Ⅰ(강원대출판부, 1991) 참조.
자생적 민요가 ‘한겨레’라는 정서로 공동작화(共同作化)한 사례다. 이는 아리랑의 문화생태학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아리랑의 의미를 불교적 세계에서 이해하는 입장으로, 그 기원을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 ‘알영(閼英)’과 ‘아리수(阿利水: 압록강)’에 두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아라리’와 고려 속요의 후렴설도 있는데, 이는 고려 시대의 불교 영향이라는 견해다. 곧 아리랑은 불교의 아라리(阿喇利) 또는 아뢰야(阿賴耶)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아라리는 “세상살이의 무인지경에서 고통과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깨달음의 사유를 보이는, 의미지향적인 면이 강하다. 아뢰야(아리야)는 모든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이고, 팔식(八識)의 하나로 해석된다.
아랑위, 들보들 동쪽에 걸어라. / 우뚝하게 높이솟아 하늘가에 반쯤서니
산빛풀빛 아스라이 외탑밖에 아롱지고 / 태양빛은 제일먼저 소암동쪽 비춰댄다.
아랑위, 들보를 서쪽을 걸어라. / 상서안개 영롱하니 푸른기와 정연하고
부처님께 예올리니 향기로움 그윽한데 / 석양노을 옮겨와서 영지서쪽 물들이네.
아랑위, 들보를 남쪽에 걸어라. / 연꽃같은 천사람이 푸르름에 잠겼는데
높다랗게 하늘닿아 땅에박힌 저뿌리여 / 용서리고 범앉으니 남쪽땅이 편하구려.
아랑위, 들보를 북쪽에 걸어라. / 메뿔리의 바위마다 회색빛이 찬연하고
드리워진 북두칠성 바위틈새 가경이니 / 국운비는 어진산승 북쪽향해 엎으렸네.
아랑위, 들보를 위쪽에 걸어라. / 황금빛갈 옥호광명 만길이나 뻗치었고
이끼서린 옛얼굴이 돌모양새 완연하니 / 향과꽃을 손에잡고 위를보며 공양한다.
아랑위, 들보를 아래에 걸어라. / 패옆경전 독송함은 매일하는 과업이라
여법하게 예불하는 저경지를 살펴보오 / 건듯부는 맑은바람 탁자아래 스며든다.
필자는 석굴암 창건 ‘상량문’ <육위가(六偉歌)>의 반복 후렴에서 아리랑의 시원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한다. 황수영, 《석굴암》, 열화당, 1990, p.105.
상량문, 지경다지기 등 일련의 노래문학은 아리랑의 가창적 발상을 가지고 있다. 아리랑의 불교적 사유체제는 이런 상량문을 비롯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신성한 자리에 불리어진 것이다. 비록 윤색된 측면이 있으나 강과 관련된 소리, 본능적 성행위와 관련된 소리 등을 연상할 수도 있으나 그 심층에는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기원성이 담겨 있다.
민요로서의 아리랑은 민중의 정서와 의식을 대변한다. 아리랑의 시성(詩性)은 삶의 밑바닥에 뿌리내린 넋두리에서 우러나온 서정에 연유한다. 특히, 다른 문학 장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솔한 사랑의 정서를 보게 된다. 아리랑의 인본적 상상력은 자연과 연관된 친연성에 비롯된 것이다. 아리랑의 진실 드러내기는 친자연적인 비유를 통해 그 절묘한 맛을 보태고 있다. 진용선,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다움, 1997.
(가) 우리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 노가지 나무 지게위에 엽전석냥 걸머지고 /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 <정선지역 엮음 아라리>
(나) 앞 남산의 실안개는 산허리로 돌고요 / 정든 임 두 팔은 내 허리를
감는다 / …… 오릉촉하 능라삼팔주로 날 감지 말고 / 대장부 긴긴
팔로 날 감아 주게.
- <정선지역 구전 아리랑>
(다) 산지당골에 까막까치는 까왁까왁 하는데 / 병든님 병환은 점점 깊어가노라.
- <제천 아라리>
아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는 상사(相思)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상사를 중심으로 한 내용은 비탄의 정조를 띰으로써 사랑의 심도를 깊게 하고, 사랑의 진실을 보여 준다.(가)・(나) 각편에서 사랑의 응어리가 ‘매듭’과 ‘풀림’의 순환적 고리로 이어진 연정적 노래다. 노래현장에서 아리랑이 사랑에다가 찍어다 붙이는 소리라고 한다. 청승맞을 서정(다)이 마음의 응어리와 연결되어 가락에 표현된다. 서정적인 소리인데 갈등이 내재된 시적 구조를 지녔기에 주목된다.
(라) 제작년 봄철에도 되돌아 왔는지 / 땟사공 아제들이 연실 내려오네
- <단양지역 구전 아리랑>
(마) 주야장 밤도나 길지 너만 홀로 밤이 긴가 / 밤이야 길더라만
임이 없는 탓이로다 / 언제나 유정님 만나 긴 밤을 짜르게
세워나 볼까.
- <충주지역 구전 아리랑>
시가문학에 지속적인 주제로 등장하는 정한(情恨)과 이별의 세계는 아리랑의 골격을 이루며 개인 정서를 표상한다. (라)와 (마)의 사설처럼 인간적 정취가 물씬거리지만 아픔이 짙게 배어난다. 그러나 기록 문학에서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이별의 상황이 투박하게 묘사되었다. 아리랑은 민중 생업활동의 실상에 깊게 뿌리 내린 탓이다. 그래서 눈물이 묻어나고 때로는 한숨이 배어 있다.
(바) 나는 못 살아, 나는 못 살아, 나는 못 살아. 정든 임 떠나서는
나는 못 살아요.
- <남도지역 구전 아리랑>
(사) 부모 동기 이별할 때에는 눈물이 찔끔 나더니 / 그대 당신 이별
하자니 하늘이 팽팽 돈다.
- <정선지역 구전 아라리>
(아) 원수야 익다구야, 이 몹쓸 사람아 / 생사람 죽는 줄을 어찌
그리모르냐.
- <진도지역 구전 아리랑>
위 (바)・(사)・(아)의 사설처럼 반복과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애타는 심정을 진솔하게 나타내었다. 유흥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그 본질에는 자위적 기능으로 놀이하는 ‘즐거움’이 있다.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의 대표적인 소리문화가 아리랑의 노래 항목이다. 김열규는 맺힘의 소리나 풀림의 소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리랑은 민족시 또는 구비시로 ‘판’에 따라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열린 장르다. 김열규, 《아리랑…역사여, 겨레여, 소리여》, 조선일보출판국, 1987, pp.19～44.
아리랑의 본질에는 생리현상의 농경문화적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풍류적이기보다 민중적이고 인간적이라 해야 옳다. 아리랑의 민중적 성격은 근대이행기에 유흥적이고 저항적인 이중성을 지녔으나 본래에는 농경의 실무성과 부합한다. 민중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 그만큼 다채롭고 다채로운 만큼 그 항목이 세계적이라는 데 있다. 단순히 계량적 수치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총체성을 담고 있는 민요라는 점이다.
(자) 우리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가무 지게 위에 엽전 석냥 걸머지고
강릉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엮음 아라리>
(차) 시어머니 골난 데는 이 잡아주고
시아버지 골난 데는 술 받아드리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시애끼 골난 데는 사탕 사다주고 / 며늘아기 골난 데는 홍두깨 찜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연변지역 <충청도 아리랑>
(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리랑 타령을 그 누가 냈나 / 이웃집 김도령 내가 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리랑 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 밥 푸다 말고서 엉덩춤 춘다
-연변지역 <청주 아리랑>
아리랑에는 정한이 짙게 베어 있지만 때로는 웃음을 촉발시키고 웃음 속에 숙연함도 느끼게 한다. (자) 사설의 엮음 위주의 묘사성은 웃음을 유발시키는 동시에 설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차)와 (하) 사설은 《두만강의 충청도 아리랑》(리혜선, 좋은날, 2001)에 실린 것인데 연변의 충북마을 정암촌 이주사 속에 나온 것이다. 그곳 사람들의 상징적 노래로서 웃음과 사연이 담겨 있다.
아리랑은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삶의 현장에는 틀을 깨는 소리다. 기능성이 강조되는 노래지만 상황에 따라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대응력이 강한 열린 장르성을 가지고 있다. 아리랑의 미학은 고유성의 애절함에도 그 가치를 부여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열린 변화성도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이 농경문화가 무너져 가는 시대에 농경적 상상력이 정보화 시대에 또 다른 민속 층위의 인자로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시학적 이해는 문학적・음악적・민속학 접근 이외에도 문학공학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아리랑의 매력은 어디든 어울리는 친연적 인본주의 성향과 끈질긴 생명의 소리로 이 땅의 다수 사람들의 자화상처럼 느끼는 데 있다. 아리랑의 한국적 정서, 토착적 선율, 민중취향의 전승물 차원을 아우르면서 한국 고유문화의 정체성 연구와 아울러 시학적 연장선 위에 활용 방안의 차원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Ⅲ. 아리랑의 현장성과 소리꾼의 생득적 미학성
강원도 일대에는 아리랑의 전승적 기반이 아직은 좋은 편이다. 70세 이상 소리꾼은 아리랑을 열 편 이상 부른다. 아리랑을 열 편 이상 부를 수 있는 노래문학의 기반은 과거 생업활동의 자위적 도구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통적인 아리랑도 부르지만 삶의 현장을 연상하여 자위적으로 부른다. 이들은 타고 난 감각도 있지만 강과 산이 거기에 있듯이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은 삶의 소리라고 느끼며 임기응변적으로 지어서도 부른다. 아리랑의 현장성은 아리랑 향유층의 생명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고 아리랑 가락을 잡고 있으면 든든하다고 하듯이 삶의 터전과 긴밀한 것이다.
소리꾼은 놀이하듯이 아리랑을 뽑아낸다. 비록 즉흥적이고 원초적인 면이 있더라도 그 자체를 즐긴다. 생득적 현상은 가창구조와 사설의 문학성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소리꾼마다 자위적으로 끌어오는 아리랑 레퍼토리는 겉으로 보면 천편일률인 측면을 보이나 삶의 현상과 연결하여 따져보면 곡진한 사연이 담긴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연은 삶의 우여곡절과 역사적 파란만장, 자연에의 동기감응으로 다양하다.
아리랑의 유희성과 여성성은 아리랑의 현장과 전승과 깊은 관계에 있다. 놀이가 구체적이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놀이 도구 이상의 구실을 하였다. 화자의 여성적 성향 역시 소리의 극화처럼 ‘내가 겪은 일’처럼 대체하기 쉬운 이야기와 연결되어 놀이적 공감이 마련된다. 소리꾼을 만나 어울리면 저절로 아리랑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은 아리랑의 음악적 본능이 있을 듯하다. 못 한다고 하면서 쑥스럽게 아리랑을 부르다가도 어느 지점이 되면 신명의 놀이판이 되기 일쑤다. 이러한 아리랑 부르기는 다른 노래 갈래에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아리랑 향유층은 나물을 뜯으며, 밭 매며, 방아 찧으며 심지어 연애하며 아리랑을 즐겨 부른다. 노래현장에서는 할 놀이가 없어 아리랑을 부르고 일 하는데 힘들기에 부른다고 한다. 아리랑은 일터를 때로는 놀이터로 만들고 장례식장에서 의식요로 탈바꿈되고 놀이판에서는 누구나 참여하여 어울리도록 하는 특성을 지녔다. 공동작이면서 ‘개인사의 서정화’인 셈이다.
동강의 우일영(영월읍 삼옥리) 가창자는 아리랑을 무수히 해설하면서 끝간데 없이 부를 수 있다고 하였다. 김의숙・이창식, 《동강 민속을 찾아서》, 푸른사상사, 2001.
아리랑의 사설이 마치 자신이 살아온 내력인양 해설하면서 구성지게 불렀다. 서강의 박복녀(주천면 판운리) 가창자는 기존 레파토리에다가 자신이 구성한 소리를 보태에 밤새도록 불렀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모란, 조사일, 2001. 9. 10, 아라리곡을 120여편을 가창하였다.
동강 뗏목꾼 정연옥(영월읍 삼옥리) 가창자는 뗏목축제에서 진한 사설의 아리랑을 끝없이 불렀다. 정연옥 가창자는 뗏목시연의 책임자인 동시에 뗏목놀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전승자(영월 뗏목축제장, 2001. 8. 5)다.
이들의 생득적 아름다움은 자연을 닮고 강을 닮고 어머니의 모성을 닮았다는 점이다. 물처럼 흐르되 돌아갈 줄 알고 여자로서 그리워 하되 오래도록 품으려는 마음처럼 포용력이 살아있는 소리의 엉어리, 녹아 흐르되 뭉치지 않는 속성 이를 ‘나지미’의 멋이라고 하자. 님의 속성이지만 투박하면서 끈질긴 사랑의 분신 같은 것이다.
(가)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배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고단했던 삶의 강은 노래문학을 통해 흐르고 있다. 우일영(여, 90세) 가창자가 들려주는 아리랑 가락에는 동강과 함께 해 온 삶의 질곡이 눅눅히 배어 있다. 가창자는 열 네 살에 이웃인 북면 마차리에서 삼옥리로 시집와 한시도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마을의 토박이며, 산 증인이다. “돈 천냥과 광목 한 통에 팔려왔어. 영감은 열살 위였지.” 일찍 부모를 여윈 두 남매였건만 말(馬)장사를 하던 오라버니의 결정에 따라 가창자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겨우 연명하던 토방집에 시집온 지 2년만에 강변 모래밭을 샀는데 사금채취로 금덩이가 연이어 나와 일대에서는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다. 금을 팔아 사들인 농토가 끝이 없었다. 이웃에서는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부러워하였다.
그것도 잠시뿐이고, 영감님의 마음은 다른 여자에게 가 있었다. 많은 농토는 오히려 삶을 짓눌렀다. 안팎살림을 감내했건만 영감님 애첩의 속옷까지 빨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밥도 해 주었다고 한다. 대처에 나가 활동하던 큰아들이 국회의원에 떨어져 살림살이가 거덜난 후에야 비로소 삶이 가뿐해졌다고 한다. 9남매를 나았건만 생존하는 3남 1녀조차 모두 도시로 나가 홀로 집과 고향을 지키는 그야말로 공수거(空手去)가 되었다. “일 많이 해 죽는 사람 없고, 속 썩어 죽는 사람 없어.” “이젠 한(恨)도 원망도 없어.” 이처럼 아리랑은 이런 가창자의 심연에서 나온 소리다.
그녀는 분명 구비시인이고 생활철학자처럼 아리랑의 지킴이로서, 동강의 어머니다. 그녀의 말은 정신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가창자는 일생의 희로애락을 일탈한 듯한 단아한 목소리로 유래와 해설을 곁들인 아라리를 빚어냈고, 삶을 초극한 소리는 일생을 함께 한 동강 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끝간데 없이 아라리를 불렀다. 가창자처럼 강원도 민중들은 소리에 묻혀 아리랑 고개 같은 삶을 꾸려온 것이다.
박봉녀(여, 63세) 가창자는 영월과 평창의 접경인 모란에서 민박집을 하고 있었다. ‘곽씨네민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집은 자신의 아들이 손수 지은 집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아주머니는 모란뿐만 아니라 근방에 전하는 여러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소리를 잘하였는데 서강아라리 등 100여 곡 이상을 구연하였다. 레퍼토리가 다양했고 소리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혼자서 일을 하다가도 힘이 들면 노래를 부르는데, 그렇게 노래를 하고 나면 속에 있던 설움과 응어리가 가시는 것 같아 좋다고 하였다. “사설이야 쌨지(많지)”라고 연거푸 말하며 “강물이 돌고 돌아서 한강으로 가는데…”, “이 내 고향 진부 땅인데 이내 몸을…”, “못 먹는 술 내 먹었더니 나지메 생각이 나네…” 등을 예전 틀로 부르다가 자신의 처지를 작시(作詩)도 하여 총기 있게 소리하였다. 타고난 소리꾼이라는 생각에는 별다는 이의가 없었다.
정연옥(남, 76세) 가창자는 입담이 좋았다. 연세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청이 아주 좋았다. 약주를 대접하며 소리를 청하자 주저하지 않고 아라리를 해 주었다. “비얄밭에 여자들이 김을 매거든. 그래서 나왔어.”라고 말하면서 화전과 뗏목 등을 이야기하였다.
(나) 비얄밭 매다가 일그러진 저 보지
아닌 밤중에 뗏사공 만나야 똑발러진다.
이 각편을 부르자 구연상황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 사설에 담긴 것을 가창자는 자세히 설명하였다. “여 강원도 감자바우라고. 그랬잖에 감자지.”라고 말하며 감자바위의 사연을 말하였다. 사연이 소리가 되고 민중들의 내면을 돌출하였던 것이다. 아리랑은 이처럼 즉흥성과 상황성에 따라 변신하고 그렇게 웃음을 주었다.
(다) 말불알 같은네 피감자를 뜸들여 놨는데
되호박 짱글커든 잡숫고 가요.
“옛날엔 아무것도 없었어. 지금은 사랑이니 모니 그러지만 옛날에 우리 클 때엔 님이라고 님. 근데 쌀이 있어야 밥을 해 주지. 정든 님이 왔는데 미쳐 꺾을 새도 없고 피감자를 쪄가지고 말불알같은 감자를 해 주는기여.” 연정적 육담은 재미있다. 육담 관련 아리랑은 흥미성과 자극성이 있다. 놀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아리랑에는 비탈과 물살의 맛이 있다. 비탈은 비알의 흘러내림이고 물살은 흐르는 곳에 따라 적응하는 면이 있다. 비탈은 곡선과 다락의 느림이 있다. 아리랑의 창곡과 사설의 비탈성은 아리랑의 원초적 발상이면서 소리꾼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감각이다. 경험의 감각은 아리랑의 비탈성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리랑 부르기의 물살 같은 유연성은 부딪치며 풀어지지 않고 어울려도 빠지지 않은 순연함과 연계되고 암하노불(岩下老佛), 비탈여자, 감자바위 등 정서와 맞물려 있다. 아리랑의 현장적 미학은 멀리 있는 이상미에 기대기보다 소리꾼들의 삶의 가장자리에서 비탈처럼 때로는 물살처럼 거기 어울려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Ⅳ. 아리랑의 21세기 문화적 담론과 활성화 방안
아리랑의 21세기적 화두는 보존과 전승 차원에서만 논의해서는 안된다. 아리랑의 담론은 민족문화의 창조적 역량과 역사적 전통 속에 갈무리된 앎과 삶의 세계를 밝혀내는 데 머물지 않고, 아리랑 문화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여 오늘에 되살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창조적 실천의 문제까지 겨냥해야 한다. 자기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는 입장에서 아리랑의 민족적 당위성을 가지고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아리랑의 생명력을 활성화시킬 수 없다.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은 물론, 문제 해결의 생산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아리랑학’의 입장에서 공동선(共同善) 추구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전자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아리랑 담론은 한국인을 가장 한국인답게 하는 정체성의 화두이면서 또한 열린 문화 항목인 동시에, 미래학일 수밖에 없는 총체적 민족담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네스코 ‘아리랑상’ 제정이나 전통문화의 세계화 방향은 보다 진지하게 그 의미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창식, ‘문학공학과 민속학의 응용’, 《문학공학과 민속학》, 대선, 2000.
유네스코에서 2001년부터 인류가 낳은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을 전승・보전하는 데 기여해 온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아리랑상이다. 곧 민족 고유의 무형자산에 모델임을 알 수 있다. 아리랑만큼 21세기 공동체 문제 중 생태문제와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작용할 ‘꺼리’가 없다. 아리랑의 보편적 인식은 민족적 정체성과 아울러 세계적 공유성을 짚어야 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세계화는 한민족의 창의력에 의해 결정된다. 창의력은 독창성을 생산하고 그 독창성이 곧 세계화의 보증이 된다. 21세기 한민족문화의 당면목표는 한민족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창의력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아리랑 문화는 21세기 문화전쟁에서 별다를 수 없다. 이에 대한 한문화의 전망은 20세기 문화변동의 오류인 서구 중심의 물질주의와 모방적 도식주의를 극복하고 ‘우리 것’의 정신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하여 물질주의와 정신주의가 만나는 문화변동 인자들을 모두 중용적으로 융합해야 한다.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리랑 교육분야부터 개혁해야 한다. 아리랑 교육 부재에서 다시 한문화의 주요 문화항목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한민족문화의 생태교육은 아리랑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리랑의 유행성은 일제강점기와 같은 위기감 속에서 전파될 수 있으나 아리랑의 정체성은 문화의 창조적 에너지로서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아리랑의 교육화 방안이 마련되고 확산운동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문화변동에 대한 문화의 디자인시대적 사고와 상생적 생태문화론의 인식은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문화전쟁을 주도하는 실천 위주의 인문학이라는 교육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21세기 한민족문화의 도전과 응전이며, 한민족문화가 동양문화권과 범세계적 위치에서 중심을 확보할 수 있는 관건이다. 21세기의 한문화는 문화전쟁을 실전상황으로 인식하는 문제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창식, 앞의 책 중 〈21세기 문화공학의 전망〉 98～105 쪽 참고할 것.
아리랑 유산에서 가장 우리다운 것을 찾고 그것을 통해 문화적 시민권을 확보하려는 문화공학적 사고야말로 세계적 문화주의로 정면 승부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다. 그 중심의 시각은 문화 읽기의 현장론과 같은 방법론이 전제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문화공학의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조선 후기 실사구시학파의 법고창신이 요구된다. 문화전쟁에 있어서 한민족의 국제적 무기는 아리랑의 정신주의 인자를 탐색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전통민요가 박물관의 인프라로, 문화상품의 마인드로 전환한 경우는 아리랑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이벤트로 자리잡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은 지역적 관심 속에서 새로운 문화재형 소리로 변질된 것이다. 아리랑은 그것이 속한 문화권에 있어서 삶의 문화적 유전자와 같은 권위를 지닌 구비시가다. 아리랑의 지역 민요 성격은 민족 문화의 정체성으로 보여주는 ‘과거유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새로운 범세계적인 소리문화 만들기에서 아리랑과 같은 전승물이야말로 문화의 생성과 창조의 구원으로 자리하고 그 인식 여하에 따라 부존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새롭게 확인된다.
지역화와 세계화, 보존과 창조의 양면성은 아리랑을 포함하여 전통문화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으나,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정보화는 단순히 자료 제공이 아니라 ‘우리식 문화’ 창출의 열린 창고 구실을 해야 한다. 순수한 의미에서 민족문화와 지역문화의 본디 민속문화유산인 아리랑 현상에 대하여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환기되어야 한다. 아리랑만큼 민족모순, 환경문제, 문화의 지역화 문제 등에 대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리랑 덩더쿵 씨발이 잡년아 돈돈만 아지
생사람 내 죽은줄 니 모르나
아리랑 당다쿵 시리렁 덩더쿵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어머님요 아버님여 내 보지 보소
아들새끼 날 나고 내 구리새미 났네요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라리가 벗연
아리랑 죽도록 안구지구 노자
정선읍내야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구
빙글빙글 싱글싱글 잘도 돌건마는
우리집 서방님은 어디를 가시구 날 안구 돌줄 모르나
아리랑 당다쿵작 시리랑 홍따닥따 아라리가 벗연
아리랑 죽도록 안구지구 노자
남의 집 서방님은 나가오리를 씨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떡치는 체반을 씻는다
남의 집 서방님은 나가오리를 씨는데
우리집이 저 도덕놈 질요감 뒤깨를 씬다
남으집 서방님의 군대칼을 차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정지 식도를 찬다
남으집 서방님으는 하이야 택시 지뿌타는데
오드바이 싸이클 까정 다 타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똥구르마만 탄다
니아까로 탄다 콩밭골로 탄다 진용선, 앞의 책, pp. 187～189.
위 사설은 진용선이 채록한 것인데 아리랑이 얼마나 개방적인 장르이기에 쓰임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선례가 된다. 육담 아리랑이라고 할만큼 걸죽한 입담을 통해 놀이판의 난장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에 말한 정연옥 가창자의 진한 사설처럼 이런 아리랑 각편 부르기는 축제판의 난장성에 적절히 부합한다. 이 걸판진 아리랑의 진면목을 축제의 또 다른 얼굴로 항목화해야 한다. 놀이판에 아리랑이 살아 있는 것이다. 민족문화의 창조적 인자는 기록문학이 지니지 못한 아리랑과 같은 공유적 적층성과 공감대의 생명력에 있다. 이런 시각에서 과거 전통사회의 전승형태에 따른 현대판의 아리랑 계승화 작업이 요구된다.
아리랑의 새로운 인식은 문화공학의 단계에까지 진전되어야 한다. 아리랑에 대한 창조적 인식은 현대시의 수용이나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국한해서는 부족하고 그 자체가 독자적인 문화패러다임으로 창출되어야 한다. 전통사회처럼 생생하게 원형을 전승시킬 수 없으나 소리의 전통성을 지킨다는 신념 속에서 여전히 계승된다는 자체도 중요하다.
아리랑의 재창조야말로 21세기 문화시대에 문화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데 활용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아리랑의 담론을 21세기형 문화 흐름으로 법고창신화해야 한다. 최근에 몇 군데 단체와 지자제에서 이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고무적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 몇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창식, <뗏목 관련 민요의 실상과 활성화 방안>, 《한국민요학》8, 2000.
첫째, 아리랑의 계승화 작업은 한국적인 것 찾기와 연결하여 개별성을 부각시키되 보편성 확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리랑 문화지도, 아리랑 관련 인물 선양 대회, 아리랑 박물관, 아리랑 공원, 아리랑 축제, 아리랑 문화상품 만들기 등인데 새로운 한민족문화서비스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한다. 특히 아리랑 축제의 재원확충이 요구된다.
둘째, 아리랑의 양면적 성격 곧 열린 장르와 닫힌 장르로서 신명성과 회한성(懷恨性)을 상생적으로 끌어올리는 한마당 태극성 또는 율려(律呂)의 신성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아리랑의 정체성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모아야 한다. 아리랑학의 공동체 문화를 위한 제도적, 학회적 차원의 관심이 고조되어야 한다. 남북화해의 동질성 확보의 첫 번째 학술회의도 아리랑에서 찾아야 한다. 아리랑의 학술적 주제야말로 민족 모순의 극복 그리고 남북의 공동선 추구에 대한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리랑의 화두가 방사선적 시각이 보여준 유해한 과학을 진단하고 동심원적인 시각이 보여준 유익한 정신적 미신을 경계함으로써 21세기형 문화주의적 고급화를 선언하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 아리랑의 문화 미디어적 글쓰기가 있어야 한다. 아리랑 미디어창작은 노래운동 차원을 뛰어넘어 아리랑의 오페라, 아리랑의 연극제, 아리랑의 문화박람회 등을 구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연구센터 구조를 벗어나 아리랑대학을 설립하여 경쟁력 있는 민족문화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길러진 인재가 세계화의 아리랑 전사(戰士)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아리랑의 지역특화가 필요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충하는 발전체계도 민・관 협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아리랑 축제는 테마축제, 관광축제, 교육축제, 화합축제 등의 성격을 기반으로 하되, ‘상생과 신명’ 축제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뗏목아리랑 관련 축제만 하더라도 정선, 영월, 단양 등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리랑의 지역축제 항목에 편입된 사례로 정선, 밀양, 진도 등 여러 곳이 있다. 김연갑, 〈정선아리랑제〉 《강원민속학》15집, 강원도민속학회, 2001.
이제 아리랑 축제도 아리랑 문화벨트화로 이어지고 생환적(生還的), 친자연적 표현전승물을 인간과 환경, 여가, 관광 등 취향문화의 패러다임에 걸맞게 연결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다섯째, 아리랑의 메카로 ‘정선’을 부각시켜야 한다. 소리의 고향은 정선이라는 대명사로 마인드해야 한다. 소리의 본고장으로 정선과 강원도적 아리랑 문화망을 만들어야 한다. 아리랑의 관련 소리꾼 대접이 달라져야 한다. 국가 또는 관 중심의 이른바 인간문화재 개념이 아닌 아리랑 문화 지킴이 개념으로 새롭게 체계적인 보존책이 필요하다. 강원도 민속예술 레파토리도 이런 차원에서 새로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원도 전통 민속예술》(강원도, 1994) 참조할 것.
아리랑대회도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아리랑 일꾼들도 지원하는 관리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강등학, <정선아라리의 성격과 전승방향>, 《아시아민속연구》2, 아시아민속학회, 1999.
여섯째, 아리랑 문화네트워크의 구성이 필요하다. 지역 자치단체, 관련 민간단체, 각종 아리랑동아리, 국학관련 연구단체 등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활성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전략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이러한 문화 구축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함께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는 문화사랑 연대형성이 필요하다. 아리랑 관련 진흥기금의 조성-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책과 관련 단체의 자생적인 수입확보책-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여 이러한 구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곱째, 아리랑의 세계화 작업은 소리 올림픽을 떠올릴 수 있도록 소리의 대축제를 놀이 대회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아리랑상이 시사하는 바대로 각 민족 고유의 소리를 한 자리에 모인 축제로 항목화하되 겨루기와 노래문학박람회(소리문화박람회)가 동시에 이루려 즐기면서 문화를 통해 경합의 재미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아리랑의 세계적 박람회는 한국에서 시작하되 월드컵처럼 대륙을 순환하면서 일정 기간에 개최하면 된다. 이를 위한 장・단기 계획의 연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Ⅴ. 맺음말 : 21세기 아리랑학을 위한 제안
아리랑은 한국 민족문화의 정통성과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승물이다. 아리랑의 시학은 독특한 한국적 시문법으로서 상생과 신명을 내재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의 이해는 민족예술학을 포함하는 ‘아리랑학’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것은 낭만적 표현주의에 매달린 결과다. 이제는 아리랑 장르의 기반적 연구뿐만 아니라 아리랑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아리랑의 활성화를 위한 주도 집단이 다양화되어야 하고 이를 문화운동에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아리랑에 대한 계승적인 작업으로 지원화, 기반화, 창조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리랑은 활인산수(活人山水)의 노래문학이다. 가창자들은 아리랑을 통해 한을 삭이고 마음의 병을 고쳤고 심심풀이 해소의 놀이 도구로서 아리랑을 부르고 즐겼다. 아리랑의 문화치유성은 문학치료학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삶의 현장에 지나치게 닮아있어 촌스러움의 순연성-이런 측면이 강원도적이고 정선다움의 정체성과 지역성-이 있기에 자생적인 힘이 있다. 반대로 취향문화시대에 노래문학의 활용도에 따라 무한한 지적 재산권을 가진 갈래다. 이 글에서는 아리랑의 현장적 미학은 투박성과 친화성, 그리고 유희성 등을 전제로 소리장르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담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최근 아리랑 관련 이벤트와 축제화는 이러한 점을 살리고 지역문화의 활성화 차원에서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아리랑학의 ‘원형론’연구와 아울러 아리랑학의 ‘창조론’이해도 법고창신의 차원에서 담론화해야 한다. 아리랑 관련 전승물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단체가 필요하고 그 조직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단군학회가 창립되어 학술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듯이 아리랑학회가 설립되어 지속적인 아리랑학의 학술대회와 어울러 아리랑박람회와 아리랑축제의 장 등을 통해 실천적인 인문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아리랑학에 대한 지식인의 인문학적 인식이 요구된 뿐더러 교육현장에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직지(直指)’ 찾기가 한 지역에서 일어나듯이 ‘아리랑의 세계화’가 민족문화의 새로운 대안 찾기 시각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아리랑의 힘과 미학 탐색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이 이루어져 인문학적으로 총체적인 역량을 확보하고 담론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 참고문헌 □
김연갑, 《아리랑》, 현대문예사, 1986.
, 《아리랑 그 맛, 멋, 그리고…》, 집문당, 1998.
강등학, <민요의 연구사와 연구 방향에 대한 논의>, 《반교어문연구》10, 반교어문 학회, 1999.
김열규, 《아리랑…… 역사여, 겨레여, 소리여》, 조선일보출산국, 1987.
김혜정, <전남지역 가창유희요에 나타난 음악적 변동>, 《한국민요학》4, 한국민요 학회, 1996.
박경수, 《한국 민요의 유형과 성격》, 국학자료원, 1998.
박민일, 《한국 아리랑 문학 연구》, 강원대출판부, 1989.
이창식, <북한 아리랑의 문학적 현상과 인식>, 《한국민요학》9; 2001(근간예정).
진용선,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다움, 1997.
최 헌, <아리랑의 선율구조 비교 분석>, 《한국민요학》6,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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